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 보려고 한다. 한 때 ‘디자인’이란 단어가 유행할 때는 여기저기 디자인이라는 말이 붙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인맥 디자인’, ‘진로 디자인’, ‘노후 디자인’, ‘청춘 디자인’…… 무슨 무슨 디자이너들이 우후 죽순으로 생겨났었다. 요즘엔 ‘큐레이터’라는 말이 유행인지 불쑥불쑥 낯선 신조어들이 보인다. ‘빅 데이터 큐레이터’, ‘큐레이슈머(Curasumer:Curator+Consumer)’, ‘큐레이션’, 심지어 ‘푸드 큐레이터’, ‘뉴스 큐레이터’, ‘뮤직 큐레이터’ 등. 일반적인 용법에서 ‘디자인’이 주로 ‘기획’, ‘계획’의 의미로 쓰인 데 비해 ‘큐레이터’는 주로 ‘선택’, '편집'에 방점이 찍히는 것 같다. 과잉생산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과거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선택의 권리'마저 전문가의 손에 맡겨버리고 싶은 심리가 생겨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낯설긴 하지만 전에 없던 단어도 아닌데 왜 근래에 ‘큐레이터’ 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일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단편적으로 ‘큐레이터’라고 불리는 전문 인력이 늘어난 것도 그 중 한 가지일 것이다. 최근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큐레이터에 대한 관심이 커져 대학에 큐레이터 학과가 생기고 미술관이나 예술단체에서 운영하는 큐레이터 프로그램, 전시 기획 공모, 예술기획자 레지던시들이 느는 추세다.
한국에서는 큐레이터=학예사의 의미로 고정되어 왠지 학문 연구만을 주로 하는 직업 같지만, 사실 현장에서 큐레이터의 업무 범위는 천차만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생각하는 큐레이터의 정의와 기대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원로작가의 기대와 신인 작가의 기대가 다르고, 상업 화랑의 기대와 대형 미술관의 기대가 다르다. 통칭 큐레이터라 불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각기 다른 일들을 하면서 미묘하게 서로의 정통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큐레이터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지만 몇 가지 오해를 풀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큐레이터의 역할을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2013년 르몽드 Le Monde지에 "큐레이터,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직종"이라는 기사에 실린 표현을 보자. " 영화계에 영화 감독이자 제작자, 스크립터, 소품, 때로는 배우의 역할까지 동시에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친다면, 예술현장에서 그와 맞먹는 일을 하는 사람이 큐레이터이다. 왜 이런 다양한 능력을 가져야 하냐고?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Curateur, le plus jeune métier du monde" LE MONDE | 19.06.2013
세계적으로 큐레이터의 역할이 점점 "만능"으로 귀결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문화권에 따라 그 개념의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식 개념인 큐레이터 Curator가 박물관 연구, 관리, 복원, 전시기획, 교육을 통괄하는 넓은 의미의 단어인데 반해,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박물관 /미술관에서 보유한 문화재의 보관, 관리를 책임지는 꽁세바퇴르 Conservateur와 전시의 기획을 담당하는 꼬미세흐 덱스포지숑 Commissaire d’exposition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된다. 단어의 뜻 그대로 전자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들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역할이고, 후자는 특정 전시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으로, '어떤' 예술작품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한국에 도입된 학예사 제도는 프랑스의 국가 자격증 시험인 꽁꾸르 드 꽁세바퇴르 Concours de conservateur du Musée를 모델로 만든 것인데 공립 박물관/미술관을 운영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고 소장품과 관련된 연구원, 행정 공무원을 뽑기 위한 제도일 뿐 ‘전시기획자’가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증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성격의 전시 기획자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려고 한다. 큰 예술 행사의 경우 종종 ‘ 커미셔너’라는 용어도 사용되는데 좀 더 공적인 권한이 강조되는 말로 ‘전시 위원장’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원이 같아서 혼동하기 쉽지만 흔히 우리가 ‘커미션을 받는다’ 라 표현을 할 때 사용되는 중개업자 Commissionnaire와 전시기획자 Commissaire는 당연히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다양한 전시 환경에서 용어의 혼용, 겸직은 매우 흔한 일로, 예술작품 판매를 도와 중개 수수료를 받는 사람을 큐레이터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실제로 전시기획과 예술품 중개상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술관이나 특정 예술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전시기획자를 흔히 독립큐레이터라고 부르는데 개인 또는 에이전시의 형태로 외부 예술기관이나 행정기관과 협업하여 예술 관련 프로젝트를 창안하고 실현한다. 이런 독립 기획자의 경우, 업무별 구분이 있는 대형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달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모든 과정 (예산 마련, 컨셉, 제작, 홍보, 기록보존 등)을 직접 진행해야 하므로 전시 주제에 대한 연구 이외에 다양한 업무를 병행하게 된다. 매달 월급을 받는 기존 예술기관의 큐레이터에 비해 덜 안정적이지만 전시의 주제나 방향을 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좀 더 자유롭고 비평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 상업 갤러리의 경우는 어떨까, 모든 갤러리에는 전시기획자가 있을까? 외국의 경우 보통의 갤러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직함은 대부분 화랑주 Galeriste, 갤러리 책임자 Directeur/Manager, 책임보조 Assistant 이며 대형 갤러리의 경우 재무담당이나 작품설치 담당자 Régisseur가 있기도 하지만 모든 갤러리에 큐레이터가 있는것은 아니다. 상업 갤러리와 미술관은 업무가 유사해 보이지만 두 기관은 설립 목적이 전혀 다르다. 공공 미술관은 그 대상이 일반 시민으로, 주 업무가 공공재인 예술작품의 보존과 전시를 통한 관람객 서비스 제공 및 교육이지만, 갤러리의 경우는 예술품 수집가 Collector를 대상으로 하는 사설기관으로 작품판매를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한다. 그 때문에 일반갤러리의 전시는 전속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상품 진열 Display 성격이 강해 굳이 전시기획자를 따로 둘 필요가 없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갤리리에서도 소속 작가들의 가치를 높이고 작품의 주제성을 강조하기 위해 외부의 유명 비평가나 큐레이터를 초청해 특별기획전을 여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는 큐레이터=학예사의 의미로 고정되어 왠지 학문 연구만을 주로 하는 직업 같지만, 사실 현장에서 큐레이터의 업무 범위는 천차만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생각하는 큐레이터의 정의와 기대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원로작가의 기대와 신인 작가의 기대가 다르고, 상업 화랑의 기대와 대형 미술관의 기대가 다르다. 통칭 큐레이터라 불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각기 다른 일들을 하면서 미묘하게 서로의 정통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큐레이터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지만 몇 가지 오해를 풀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큐레이터의 역할을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2013년 르몽드 Le Monde지에 "큐레이터,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직종"이라는 기사에 실린 표현을 보자. " 영화계에 영화 감독이자 제작자, 스크립터, 소품, 때로는 배우의 역할까지 동시에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친다면, 예술현장에서 그와 맞먹는 일을 하는 사람이 큐레이터이다. 왜 이런 다양한 능력을 가져야 하냐고?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Curateur, le plus jeune métier du monde" LE MONDE | 19.06.2013
세계적으로 큐레이터의 역할이 점점 "만능"으로 귀결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문화권에 따라 그 개념의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식 개념인 큐레이터 Curator가 박물관 연구, 관리, 복원, 전시기획, 교육을 통괄하는 넓은 의미의 단어인데 반해,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박물관 /미술관에서 보유한 문화재의 보관, 관리를 책임지는 꽁세바퇴르 Conservateur와 전시의 기획을 담당하는 꼬미세흐 덱스포지숑 Commissaire d’exposition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된다. 단어의 뜻 그대로 전자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들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역할이고, 후자는 특정 전시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으로, '어떤' 예술작품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한국에 도입된 학예사 제도는 프랑스의 국가 자격증 시험인 꽁꾸르 드 꽁세바퇴르 Concours de conservateur du Musée를 모델로 만든 것인데 공립 박물관/미술관을 운영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고 소장품과 관련된 연구원, 행정 공무원을 뽑기 위한 제도일 뿐 ‘전시기획자’가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증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성격의 전시 기획자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려고 한다. 큰 예술 행사의 경우 종종 ‘ 커미셔너’라는 용어도 사용되는데 좀 더 공적인 권한이 강조되는 말로 ‘전시 위원장’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원이 같아서 혼동하기 쉽지만 흔히 우리가 ‘커미션을 받는다’ 라 표현을 할 때 사용되는 중개업자 Commissionnaire와 전시기획자 Commissaire는 당연히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다양한 전시 환경에서 용어의 혼용, 겸직은 매우 흔한 일로, 예술작품 판매를 도와 중개 수수료를 받는 사람을 큐레이터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실제로 전시기획과 예술품 중개상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술관이나 특정 예술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전시기획자를 흔히 독립큐레이터라고 부르는데 개인 또는 에이전시의 형태로 외부 예술기관이나 행정기관과 협업하여 예술 관련 프로젝트를 창안하고 실현한다. 이런 독립 기획자의 경우, 업무별 구분이 있는 대형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달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모든 과정 (예산 마련, 컨셉, 제작, 홍보, 기록보존 등)을 직접 진행해야 하므로 전시 주제에 대한 연구 이외에 다양한 업무를 병행하게 된다. 매달 월급을 받는 기존 예술기관의 큐레이터에 비해 덜 안정적이지만 전시의 주제나 방향을 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좀 더 자유롭고 비평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 상업 갤러리의 경우는 어떨까, 모든 갤러리에는 전시기획자가 있을까? 외국의 경우 보통의 갤러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직함은 대부분 화랑주 Galeriste, 갤러리 책임자 Directeur/Manager, 책임보조 Assistant 이며 대형 갤러리의 경우 재무담당이나 작품설치 담당자 Régisseur가 있기도 하지만 모든 갤러리에 큐레이터가 있는것은 아니다. 상업 갤러리와 미술관은 업무가 유사해 보이지만 두 기관은 설립 목적이 전혀 다르다. 공공 미술관은 그 대상이 일반 시민으로, 주 업무가 공공재인 예술작품의 보존과 전시를 통한 관람객 서비스 제공 및 교육이지만, 갤러리의 경우는 예술품 수집가 Collector를 대상으로 하는 사설기관으로 작품판매를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한다. 그 때문에 일반갤러리의 전시는 전속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상품 진열 Display 성격이 강해 굳이 전시기획자를 따로 둘 필요가 없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갤리리에서도 소속 작가들의 가치를 높이고 작품의 주제성을 강조하기 위해 외부의 유명 비평가나 큐레이터를 초청해 특별기획전을 여는 경우도 있다.
JEE YOUNG KIM©